Amour, 2012

I would call it a love or life.
삶은 결코 친절하지 않으며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을 몇번이고 무너지게 만든다
안느가 처음으로 잠깐의 기억을 잃었을 때,
그리고 그런 안느를 어렵게 그녀의 남편인 조르주가 돌보는 5초간의 장면을 통해,
안느의 간호사가 그녀를 거칠게 다룰때,
그녀가 아프다는 단말마같은 비명을 계속 내지를 때,

그런데 영화는 또 그렇게 무너지려는 관객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 이야기는 당신을 무너뜨리고 눈물을 쏟게 만들어 그저 무지막지하게 슬픈 이야기였다는 어쩌면 싸구려로 끝나버릴 수 있는 감상만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말이다.
눈물이 왈칵하고 터지는 순간 영화는 다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이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당신의 눈을 감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신형철이 영화에 대해 쓴 감상평을 먼저 읽었고, 그리고 최근 어느 노부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이었다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할 배경음악을 삽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작정 관객들을 울게 하지 않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조르주는 하루 종일 간호사가 안느의 곁에 있지 않는 동안에는 내내 그녀를 돌봤겠지만
오직 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로만 그가 안느를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 5초는 참혹할 정도로 느리고 또 고통스럽다
그가 그런 삶을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을지 관객들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안느를 돌보는 조르주는 이처럼 성숙한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합리적이고 따뜻하고 경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안느를 사랑하는 남편이며, 좀처럼 평정을 잃지 않으며 그녀를 그 사랑으로 보듬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그의 딸 에바가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또 두 사람이 전화통화 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누구도, 가장 가까울 수 있는 딸마저도 이 부부의 고통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프게 보여준다.
조르주는 에바에게 내가 너의 섭섭한 마음, 너의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보살펴야 하느냐고 되묻고,
안느를 더 힘들게 할 뿐인 그녀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으려 안느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잠근다.
조르주에게 안느가 힘들고 그녀를 돌봐야하는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하는 처지에서는 자신의 딸은, 아마도 안느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딸은 사실은 그저 타인일 뿐인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안느는 영화 내내 자신의 삶의 주인이길,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자신이길 바란다
그러나 죽음은 혹은 병듦, 늙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가차없이 그녀를 몰아붙인다.
그녀의 아름다웠을 삶들의 기억들은 이제 이런 고통 속에서 그녀에게 더는 아름다운 기억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삶이 가져다주는 모욕 뿐이며 그것을 막으려고 몸부림칠수록 그 모욕들은 그런 그녀를 비웃듯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할 뿐이다.
그녀의 제자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것도, 우편으로 보내진 CD를 들으며 그녀에게 보내진 제자의 걱정이 달갑지 않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조르주가 안느의 숨을 끊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르주는 안느의 고통에 공감하는 듯 하지만 안느가 원하는 것을 해줄 용기가 없다.
무엇이 안느에게 좋은 것인지도 헷갈려했을 그일 것이다.
안느는 말을 점점 잃어가며 중간중간, it was nice나 life is beautiful, but it's long 따위의 알듯말듯한 말을 한다.
it was nice는 안느가 조르주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그런 그녀는 이내 말하는 것을 거의 잊고 이제 아프다'는 비명을 질러댄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 앞에서 조르주는 침착하게 어렸을 적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캠프에 갔던 이야기.
자신은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저 고통이었으며 디프테리아에 걸렸고,
결국 엄마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하는 엽서를 보냈다고.
나는 이 장면을 그저 조르주가 안느를 진정시키기 위해 꺼낸 이야기이며,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조금은 진정했을 그 순간
조르주는 그 일을 실행한 것이라고 봤다.
자신이 어렸을 적 느꼈던 고통이 지금 안느가 느끼고 있을 그런 고통과 공감의 고리를 만든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안느를 떠나보낸 조르주에게 삶은 무의미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영화 속 내내 안느와 조르주의 집을 들락날락 거리며 조르주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비둘기는.
조르주는 비둘기가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불안해하며 서둘러 쫓아낸다.
그러나 안느가 죽고 난 후 그는 비둘기를 잡으려고 시도한다
조금 불가능해보일 것 같았던 시도는 성공하고 그는 담요로 비둘기를 끌어안는다
거기에서 조르주는 조금은 평화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이제 사랑을 잃고 의미 따위를 잃어버린 조르주를 보는 일이다
그는 안느를 위해 꽃을 사고 장례식 비슷한 것을 치른다
그리고 안느의 환영이 나타나고 조르주는 그녀를 따라 집을 나선다
아마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환상이기에 가장 완벽한 결말일 수 밖에 없던 이 장면 앞에서
나는 또 울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대중문화전문지 롤링스톤은 'just two people offering each other total commitment'라고 썼고, 나는 이런 평가에 격하게 공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by 상콤마녀 | 2015/02/17 06:37 | 끄적끄적보고또듣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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